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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석사의 가을

by 도무스 2022. 6. 11.

날씨 화장한 가을.
부석사는 단풍으로 그 주변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오르는 입구부터 아니, 주차장까지 오는 길에도 은행나무 길이 노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오르는 입구

티켓팅을 하고 시작된 계단부터 울긋불긋한 가을의 진한 감성이 온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매표소에서 오르는 계단

조금 오르니 길은 온통 노란색입니다. 앞서 가는 연인의 걸음이 가을의 아침 빛에 아리게 들어옵니다.

노란 은행나무 길

은행나무 길의 끝에 일주문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길 끝에 보이는 일주문

일주문을 통과 한 길 옆에는 붉은색 단풍으로 둘러싸인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당간지주가 보입니다.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당간지주를 지나 단풍길을 느끼며 50여 미터를 가니 천왕문이 나타납니다.

천왕문

천왕문 옆으로 빠지는 사잇길에는 깊은 가을이 심어져 있고, 그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단풍이 절정인 길의 모습

가을 하늘은 청명했고 풍경은 황홀합니다.

관음전으로 오르는 길

회전문을 지나 범종루로 가는 길에는 친구, 연인들이 추색을 느끼며 오르고 있습니다.

범종루로 가는 길

마스크를 낀 채 조금씩 숨이 가빠지던 때 눈앞에 범종루가 보입니다. 뒷산은 짙은 단풍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범종루에 가는 길 좌우에는 쌍탑이 오랜 세월을 말해 주는 듯 합니다.

쌍탑
범종루

안양루의 모습은 장엄합니다. 감동 그 자체입니다.

안양루

안양루 앞의 석등은 국보 제17호입니다. 짙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안양루와 석등(국보 제17호)

마지막 여정은 무량수전입니다. 책에서 보던 배흘림 기둥과 오랜 세월을 지켜온 소박한 아름다움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부석을 볼 수 있습니다.

부석

 

법고


역사적 단상

불교사적 위치

신라의 불교는 눌지왕 때에 들어와 법흥왕 때에 수용된 뒤에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중국을 통하여 전입된 교학 불교는 신라 불교로 하여금 종파성을 띠게 하였는데 가장 특징적으로 운위되는 종파는 화엄종과 법상종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법사실이 뚜렷하고 종찰이 확실한 것은 의상의 화엄종입니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입니다. 의상은 676(신라 문무대왕 16) 왕명을 받아 부석사에 자리 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석사 원융국사비에는 지엄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의상이 다시 제자들에게 전법하여 원융국사에까지 이른 것과 원융국사가 법손이 된 뒤 부석사에 자리잡았다는 사실 등이 밝혀져 있습니다. 부석사의 생김을 정리한 역사적 기록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비석에 쓰인 몇 문자나 절을 재건한 기록보수한 기록 등만이 전합니다.


안양루(安養樓)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위치한 누각입니다. 규모는 정면 3, 측면 2칸이며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건물의 위쪽, 아래쪽 편액이 다릅니다. 난간 아랫부분의 편액은 "안양문", 위층 마당 쪽은 "안양루"라고 씌여 있습니다. 문과 누각의 2가지의 기능을 부여한 것입니다. 극락이란 뜻을 가진 '안양'의 안양문은 극락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합니다. 고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경치를 시문으로 남겼고, 누각 내부에 시문 현판이 담겨있습니다. 2층 공포와 공포 사이로, 여러 개의 금색불상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부석(浮石)​의 전설

신라 문무대왕 1(661) 의상 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 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의상 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 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의상 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습니다. 이때 선묘 신룡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습니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렸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의 미학

무량수전은 정면 5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의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습니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합니다. 예로부터 건물의 구조는 단면에 위치한 도리의 수를 셈하여 말하는데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입니다.

면석과 갑석을 짜맞추어 만든 가구식 기단과 사갑석을 받치는 지대석이 돌출된 계단원형 주좌와 고막이를 가진 초석의 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입니다. 계단 동측면에 선각된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 석수김애선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의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유의하여 볼 부분은 평면의 안허리곡()‚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배흘림항아리형 보 등의 의장 수법입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착시에 의한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고안된 고도의 기법들입니다.

안허리곡은 보통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을 말하는데 기둥의 안쏠림과 관계가 있습니다.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것입니다. 무량수전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이 공포와 벽면에까지 적용되어 마치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 있습니다.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줍니다. 기둥의 배흘림 역시 기둥 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무량수전의 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합니다.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습니다. 주두 위에서 공포의 짜임이 시작되고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북방계통의 수법입니다. 주두와 소로는 내반된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공포 사이 포벽에 뜬 소로를 가지고 있는 점은 이 집만의 특징입니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입니다.

내부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45)를 모셨습니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특이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열주를 통하여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인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진입하는 정면쪽으로 불상을 모시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는 드문 해결 방식입니다.

대들보 위쪽으로는 후대 건물과는 달리 천장을 막지 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입니다. 굵고 가늘고 길고 짧은 각각의 부재들이 서로 조화 있게 짜 맞춰진 모습은 오랫동안 바라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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