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계서원(默溪書院)
묵계서원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국도변에서 100m 정도 고갯길을 올라 왼쪽에 서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원 주변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소나무가 세월을 짐작하게 합니다. 묵계서원은 응계 옥고(1382∼1436) 선생과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김계행은 조선 초기 성종 때 대사성을 역임하였고, 이조판서 양관대제학에 추증됐으며, 옥고는 세종 때 사헌부 장령(掌令)을 지낸 바 있습니다. 보백당 김계행은 조선 전기 대사간,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 등 3사의 요직과 성균관 대사성을 거치면서 당대 거유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과 함께 영남 유림을 이끌며 도덕과 학문으로 덕망을 받아온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후세에 유림에 의해 묵계서원에 제향됐습니다. 김계행은 안동이라는 지명이 있게 한 고려건국 공신 삼태사(三太師) 중 한 명인 김선평(金宣平·안동 김씨 시조)의 후예입니다. 안동은 성리학과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며, 이 지역에 선비문화를 정착시킨 주역은 퇴계 이황입니다. 고려 말 안향, 이제현, 우탁이 이 고장 출신으로 성리학의 토대를 만들었다면 거기에 선비정신이라 부를 만한 고고함과 청백을 심어준 이가 한 세대 앞선 보백당 김계행입니다.

1684년(숙종 10년) 서원을 세우고, 1706년(숙종 32년) 묘우(廟宇)인 청덕사(淸德祠)를 건립하여 김계행(金係行)과 옥고(玉沽)를 제향하였습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습니다. 훼철되기 전의 경내건물로는 청덕사(淸德祠), 강당인 입교당(立敎堂)을 비롯하여 극기재(克己齋)·읍청루(挹淸樓)·진덕문(進德門)·신문(神門)·주소(廚所) 등이 있었습니다.

그 뒤 1925년 도내 유림이 협력하여 강당 등 일부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로 사용하여왔습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中丁: 두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입니다. 묵계서원 및 안동김씨 묵계종택은 1980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6,000평과 대지 1,000평, 임야 5정보 등이 있습니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가운데는 마루를 깔고 양 옆에 온돌을 설치한 일반적인 형태를 보입니다. 서원 왼쪽으로는 이 서원을 관리하는 ㅁ자형의 주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묵계서원에서 진행하는 ‘꼬마도령의 놀이터’는 3년 연속 문화재청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면서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묵계종택은 서원에서 멀지 않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고, 종택 안에는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보백당이 있습니다.
만휴정(晩休亭)의 원림(園林)
묵계서원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서 마을 입구에 다다르면 만휴정을 위한 넓은 주차장이 있습니다. 마을을 지나 오르막인 산허리를 돌면 아름다운 폭포와 함께 나무들 사이로 만휴정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휴정은 ‘만년에 휴식을 취할 곳’이라는 뜻으로 묵계의 깊은 산골짜기 송암 폭포 위에 있습니다.

이곳은 보백당 김계행이 연산군의 폭정에 낙향하여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정자입니다. 김계행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곳입니다. 김계행은 조선 전기의 청렴결백한 관리로 뽑혔던 분으로, ‘내 집에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뿐이다.’라는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앞면을 마루 형식으로 개방하여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고,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어 학문의 공간으로 활용하였습니다.

16세기 초에 지은 이 정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그 아래 떨어지는 폭포는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자 아래 바위에는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란 큰 글씨를 새겨 놓았습니다.
산수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만휴정은 선비의 품격을 엿볼 수 있는 조선 인문정신의 정수를 함축하고 있는 정자입니다. 영화 ‘미인도’, KBS ‘공주의 남자’ 촬영 배경인 이곳은 최근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방영된 이후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 동쪽 문과 서쪽 문 위에는 김계행의 유훈이 걸려있습니다. ‘지신근신 대인충후(대인충후持身謹愼 待人忠厚)’는 ‘몸가짐을 삼가고, 남을 대할 때 진실하고 온순하라’는 의미로 가훈인 ‘나를 낮추고 타인을 높인다’와도 관련됩니다. 묵계종가에서는 이 현판을 보면서 선조의 뜻을 가슴속에 새기고 대대로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은 ‘우리 집안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은 오직 청백일 뿐이다’라는 뜻입니다. 보백당이라는 당호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 정자에서 술을 마셨다. 국화가 반쯤 피었고 단풍도 조금 붉었다. 숲속의 새들도 재잘거렸다. 날은 이미 저물었다. (…)"(권병섭의 『석오집』 권8, 「유만휴정기遊晩休亭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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